우리 아빠 -

2018. 8. 6. 11:49그냥 사는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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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때부터 배를 타셔서 지금 내 나이 38살.

아빠와 함께한 시간은 반.. 19년. 거기서 또 반... 9년 반..

그것보다 더 짧다.


어릴때 배를 타시다가 잠시 육상으로 전환하셔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판매일을 하셨던건

기억을 한다.

그때에는 저녁에 술을 드시고 얼굴이 벌겋게 되어 오셔서

형이랑 나를 보고 좋아하시면서 얼굴을 부비셨다.

얼굴 따거웠다.


나중에 들었지만.. 배타고 오셨을때 어린 나와 형.

형도 그랬는지 모르겠다.

낯선 사람이라고 엄마뒤에 숨어서 잘 안왔다고 했다.

거기서 충격을 받으셨을지도 모르겠다.



나도 일본정리하고 왔을때... 6개월 지난 명희가 내 얼굴만 보면 울었으니까.

명희가 잘때 옆에 살짝 누워 손잡고 잤었으니까.




하지만 육상근무로는 벌이가 좋지않았고, 가족을 위해 다시 배를 타러 나가셨다.




▼ 2016년 12월 20일. 막내 손자에게 절받고 좋아하시는 아빠








회사를 일일이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내가 어릴때. 현대상선 들어가시기 전에는

한 2년마다 2~3개월정도 휴가를 오신걸로 기억한다.

빨라도 1년6개월은 넘었었다. 한번 나가시면 참 안들어오셨다.


어릴때 기억으로는... 한번 들어오셔서 단둘이 서면 어딘가 영화를 보러갔는데

점심먹으러 들어간 어느 식당.

거기 배달하는 주인 아저씨랑 요리만드는 주인 아주머니가

우리 들어갈때부터 소리높여 싸우는데 주문하고 손님이 앉아있음에도

계속 싸우고 있어서 화가난 아빠가 가자고 벌떡 일어나 가게를 나갔다.


싸우던 주인네는 당황해서 손님~ 하고 불렀고, 나는 쫄아서 그냥 따라나갔었다.

그런 기억이 있다.



아무튼. 내가 태어났을때부터 3개월씩 계산을 해보자.

내가 두살때 6개월 같이 있었던 셈이다.

그리고 육상근무 1년 치면 1년 6개월

내가 세살때 1년6개월 함께 했다.

여기서 10년. 내가 13살이 되면 30개월. 2년 6개월.

총 4년이다.


현대해상 들어가시고는 빠를때는 1년에 한번 나오시고..

휴가 양보하시고 나오실때에는 근 2년만에 나오실때도 있었지만

보통 두항차.. 1년에 한두달 휴가는 받으셨다.



실제로.. 배가 늦어져서 두달 좀 넘길때도 있었고,

급해서 일주일만에 나가신적도 있었다.


평균적으로 1년에 한달 잡으면 대충 맞을거다.



20살이 되는 7년간 7달. 그냥 1년 치자.

그럼 20살동안 5년.

군대갔던 2년 2개월동안 휴가때 한 5일정도 뵀다.



▼ 2008년. 중동에서 이종사촌형 우아형님과 현지에서 만나 찍은 사진.




그리고 전역 후.. 1년 공부하고 난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에 있는동안 내가 한국으로 들어가서 며칠 뵀다.


그러고보니.. 아빠가 일본에 오신적은 없었나????

사진에는 없다. 그시절에는 애들이 없어서 뭘 하든 찍었을텐데...없다.


그냥 1년 잡자.

그럼 내가 한국으로 완전히 돌아오는 2011년 7월까지..


6년.



그 이후로.. 아빠는 현대상선에서 은퇴하시고 다른 회사에서 스카웃해서 계속 배를 타셨다.

의외로 우리 아빠. 능력이 좋아서 여러 회사에서 눈독들이던 인재셨다.


여기서는 1년~1년 반에 두달정도 휴가를 받으셨다.

늘상 그랬듯이.. 언제나 변수는 있었다.

한달쉬다 나가실때도 많으셨고.. 두달 다 채운적은 있었나? 없었을것이다.

그래도 두달로 계산한다.


올해. 2018년까지 14개월. 1년 2개월.

그럼.. 7년 2개월.



난 38년 사는동안 아빠랑 같이 있었던 시간은 넉넉잡아도 8년.

내 인생의 반의 반도 안된다.





▼ 2013년 5월. 앞집아줌마, 엄마, 아빠... 중국여행




내가 어릴때에는 아빠가 자꾸 나가시는게 슬펐고..


내가 사춘기때에는 아빠가 집에 계시는게 어색하고, 없는게 더 편했다.

매번 단전호흡하시고, 난 친구들과 노는게 더 재밌었기때문에..


군대갔다오고나서 세상에 혼자 설 준비를 하면서

우리 아빠가 얼마나 대단하신지 알게 되었고..

비로소 존경하게 되었다.

그 후로.. 나에게 있어서 영웅은 우리 아빠 단 한분이셨고,

상대가 누가 되든 말을 할때 우리 아빠는 무조건 높여 불렀다.

그로 인해 지적을 몇번 당하긴 했지만.

난 당당하게 말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내 안에서 우리아빠보다 높은 사람은 없으니

화자인 내가 말할때 높여말하는게 당연하지 않느냐?



일본어 공부를 하고, 일본에가서 바쁘게 살면서..

집떠나 타지에서 고생한다는게 어떤게 알게되었고..

지금까지 자신을 희생해 가족을 먹여살린 아빠가 더욱 대단하게 느껴졌다.

일본에 터를 잡고, 외국에서 살게 되는구나.. 싶었을때 후쿠시마 사태가 터졌고,

나는 고심끝에 명희를 위해 한국으로 귀국을 택했다.

그때부터 아빠가 휴가나오실때마다 손자들 재롱도 보시고 같이 놀러도 가고..

참 좋은시간을 보냈다.


이 시간이 계속 될줄 알았던건... 아빠가 건강하셨기 때문일것이다.







▼ 2016년 11월20일 포항에 배웅갔던 날






항상 책을 많이 읽으시고, 생각이 깊으시며 남의 말을 경청할줄 아셨다.

그리고 아랫사람들의 기분을 잘 생각하셨고, 조화를 중시 하셨다.

아빠 배가 정박하러왔을때.. 가족들이 면회식으로 가는 기회가 있었다.

난 거기 딱 한번 올라가봤다.


그때... 아빠 밑에서 일하던 조선족 사람들이 나를 노리고있었다.

아빠는 술을 잘 안드시니.. 가족이 놀러오는데 아들이 있다고해서

그 아들을 노렸던것이다.

내가 혼자서 배 구경을 하며 어슬렁거릴때 나를 방으로 데리고 가더니

평소에 기관장님에게 신세 정말 많이 지고있다면서 나한테 술을 먹였다.

바쁘십니까?? 라고 묻길래 난 그냥 지금 바쁜건줄 알고 괜찮다고 하는데

그때마다 술을 먹였다.

나도 술이 약한데..


그래도 해맑게 웃으면서 기관장님이 얼마나 잘챙겨주시는지..

정말 감사하다며 술을 주는 그사람들을 거절할수가 없었다.

심지어는 나 보고 중국 어디 사는데 근처에 오면 꼭 연락을 달라면서

나한테 그러더라.


하긴... 밑에 사람들 휴가 가야한다고 본인이 한항차 더 타시고...

이번에 1기사 애까지 낳았는데.. 실력평가가 시원찮다고 걱정하시면서

어떻게든 승진시켜주려 하시던 분이시니.

평이 안좋을리가 없지.

참으로 대단하신 분이시다.





▼ 2018년 4월1일 창원해양공원







모자를 항상 삐딱하게 쓰시는 아빠.

이번에 하나 사드렸는데..

잘쓰고 다니셨는지 모르겠다.


어릴때 그 튼튼하고 다부지던 아빠의 모습은

내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연약해 지셨고...

그 등을 보며 나는 계속 걸어왔었는데 이제는 볼것이 없다.


어릴때 아빠없이 자란거나 마찬가지인 나.

언제나 엄마랑 아빠는 아쉬워하신다.

나같은 경우는 칭찬을 해주면서 잘 키워야하는 그런 타입인데..

그런걸 잘 모르던때라서 너무 엄하게만 키우고, 억눌러서 창의력을 다 없애놨다고.

아빠가 집에 계셨다면 잘 할수있었을텐데.. 하시면서.


지금 명희가 좀 그런 타입니다. 나 어릴때처럼.. 감수성 예민하고 노력하는 모습은

겉에 드러내지 않으려하면서 승부욕은 강하고...


애들을 대함에 있어서... 아빠가 계셨더라면 이렇게 놀아주셨을것이다..

저렇게 했을것이다.. 라고 생각하며 대한다.

휴가나오셔서 보여주시는 모습만 봐도 얼마나 손자들을 끔찍히 여기시면서

잘 놀아주시는지...


아빠는 아빠. 나는 나인만큼 내 성격과 내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대하긴하지만

항상 나는 아빠였다면 이 상황에서 어떤식으로 했을것인가를 생각한다.

그 생각전에 먼저 화를 낼 때도 있긴하지만...

내 인생의 롤 모델인 아빠.

난 아빠 만큼만 헌신적이고 사랑으로 가족을 대하고 부양할수있다면

성공한 아빠라고 생각한다.





▼ 2018년 5월5일 거제씨월드









사람이 많아서 벨루가와 사진찍는건 담번에 하자고 했음에도

손자를 위해서 데리고 가 줄서서 사진을 찍었던 아빠.

덕분에 우리 명희는 할아버지와의 마지막 추억을 이렇게 제대로 남길수가 있었다.

저 사진은 씨월드 종이에 꽂혀서 명희방에 장식되어있다.

레고 뒷쪽이긴 하지만..


다들 밥을 먹고 숙소로 돌아가는데 혼자서 바닷가에 가 뭘 좀 보고싶다고 뛰어나가는 명희.

난 완희를 안고있어서 갈수가 없었고... 아빠가 가셔서 가만히 지켜봐주신다.

기다려주신다. 그렇게..

요즘 나오는 육아서적을 보면 아이들은 자기가 할수있는것, 하고싶은것을 할때

기다릴줄 알아야한다고 한다. 어른의 시간으로 너무 다그치는것이 아니라..


그렇게 책에도나와있는것을 우리 아빠는 읽지않아도 알고 계신다.

대단하지 않나?

그러고보니.. 내가 아빠한테 엉덩이 맞았을때에는 거짓말을 했을때 뿐이었다.

그 외에는 혼나기는 해도, 맞지는 않았었다.


어릴때 거짓말하는 버릇을 들이는게 얼마나 안좋은지는.. 내가 잘 안다.

거짓말을 하며 자라왔기때문에..

대신 거짓말을 잘 하기위해서는 잔머리가 잘 굴러가야한다.

명희가 걱정이다 ㅋㅋ







▼ 2018년 5월 19일 고성펜션 마지막여행





항상 가족을 사랑하시던 우리 아빠.

바다마을 출신답게 바다의 생물들을 많이 알고 계셨다.

고성 펜션에 놀라가서 앞바다 쪽에서 바위에 막 붙어있는것들 명희한테 가르쳐주시고

명희는 신나서 다른애들이나 어른들 전부 갯펄에서 바지락캐고 게잡는데

혼자 바위를 돌며 별의 별것들을 모았다.

금벗이었나? 그런것들도...


커가는 손자, 손녀를 보시면서 흐뭇해 하시던 아빠.

아무리 몸이 피곤하고 안좋아도 손자, 손녀들을 안아주시고,

같이 놀아주시고..


나도 그런걸 보고, 아빠에게 손자 손녀들의 재롱이나 그런것들을

보여드릴수 있어서 나름 뿌듯했었다.


이제 초등학생이 된 첫째들..

말을 좀 더 하게 된 둘째들..


앞으로는 어디를 어떻게 놀러가서 좋은 추억을 쌓을까..

신나는 걱정과 상상을 하고있었다.


고성 펜션도 좋았고, 다른데도 가봐야지.. 이렇게.

이번에 일어나셔서 돌아오시면 사자밥도 주러가고, 카피바라도 만지러가고..

가을이 될테니 가재낚시도 할수있겠구나..

참으로 희망적인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그렇게도 건강하신 분이셨으니.


배안의 사람들, 회사 사람들 모두가 우리 아빠가 그럴줄 몰랐다고

다들 충격을 받았다.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런것이다. 운명이란것은.






▼ 선글라스 고르는 아빠




엄마 안경맞추고 형님 안경맞추러 장유에 갔을때.

해링이 한테 어떤게 어울릴지 보여주려고 찍은 사진.

이때 사진을 찍은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내가 골라드린 모자를 쓰시고...

저 선글라스는 내가 챙겨야겠다. 도수넣고.. 내가 껴야겠다.

겉멋, 패션에 신경많이쓰는 제연이가

아버지 유품이라고 촌스럽게 보이기까지하는 반지를

항상 끼고다니는 심정을 알것같았지만

이제는 확실하게 알겠다.


사진들을 보니 감정이 또 격해진다.

빠르면 오늘... 늦어도 내일 화장에 들어간다.

형이라도 가있는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하지만 그만큼 모든 부담을 형 혼자서 감당하고있다.

정말 미안하면서도 고맙기만 하다.

화장하고 뼈를 거두는 형은 얼마나 견디기 힘들까..


뇌경색과 급성신부전증으로 상태는 안좋으셨지만

밤에 갑자기 가셨다고한다.

아들 고생시키시기 싫었던것에 틀림없다.

아빠는 그런분이니까.


배를 타고있는 특수한 상황에서 골든타임을 놓치고

결과는 이렇게 됐다.

나도 운명이라고 생각하고는 있다.

생각만 하고있다.






▼ 손자, 손녀들을 언제나 흐뭇하게 보시는 아빠.




아직은 그래도 가족들 없을때.. 혼자 있을때 눈물이 막 나온다.

최대한 감정을 추스리고 가족들 앞에서는 버티고 있긴하지만...

빠르면 수요일 오후.. 늦으면 목요일 오후 형이 아빠를 모시고 김해공항으로 온다.


과연 내가 잘 버틸수있을까?

아빠가 가실때 내가 하는 인사는..

'건강하게 잘 다녀오세요~' 였다.

건강하게 나가셔서 한줌의 재가 되어 오신 아빠를 마주하게되면..

자신없다.

갈때는 남욱이랑만 가야겠다.







▼ 감사패 받고오신 아빠



배를 오래 타시면서 업적을 인정받아.. 감사패를 받아오셨다.


안그래도... 많이 타봐야 이번타고, 담번에 타면 끝이라고..

아마도 이번에 타고 내리실거라고 하셨다.

내 벌이만 유지 됐어도..이번에 나가실 일을 없었을텐데.

용돈 드리면서 손자들이랑 편히 지내라고 했을텐데.


나도 수익이 줄고하니... 탈수 있으실때까지 타신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 형이 찍은 아빠 핸드폰



2016년 부터 아빠는 손자들이 좋아하는걸 듣고 나가서 선물을 사주시려고

메모를 해 두셨다.

바탕화면은 완희. 찡그리고 우는 사진일까...

카톡 프로필사진은 6살인가? 5살 명희가 우는 모습으로 내가 바꿨었다.


우리 아빠는 효심이 남달랐다. 다른 형제들과의 우애도 남달랐다.

약간 유교적인 예의형태를 띄긴했지만...


나는 어릴때부터 조금 살갑게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있어서

주로 친척들 찾아뵐때 많이 가고는했다.

제주도에 갈때에도 아빠가 안계실때는 나 혼자 대표로 가기도 했다.

할아버지가 아직 계실때... 한번 인사를 드리러 갔었다.

나 혼자.

아빠께 배운대로 언제나 일어나면 할아버지 방을 노크하고 들어가서

안녕히 주무셨어요~ 인사를 했다.

할아버지는 그게 참 대견했나보다.

어느날은 날 앉혀두시고... 아빠 칭찬을 어마하게 하셨다.

그때가.. 할아버지 돌아가시기 2년전인가? 그쯤 됐을것이다.


호복이가 얼마나 착하고 부모한테 잘하는지.. 눈물을 글썽이시면서

칭찬에 칭찬을 하시고, 난 꼭 아버지 닮아서 훌륭한 어른이 되라고 하셨다.


직장에서도 인정받고, 존경받고,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우리 아빠는 알면 알수록.. 위대하다.


과연 나는... 아빠에게 칭찬받을 아들일까?





▼ 중국 여행때.. 쑥스럽고 어색하게..



엄마와 만나서 결혼하게 된 이야기는 영화의 일부로 만들어도 될것이다.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서 아들 둘 낳고.. 그 아들들이 또 자식을 낳아

할아버지가 되었다.


사랑표현이 그리 유연하지 않으시고, 나역시 그렇다.

애들은 그러지말라고 나름 표현을 하긴 하지만... 엄마 아빠에게는 그렇게까지는 못했다.

지금도 그렇게 하지는 않을거다.


약간 어색한 포즈... 그리고 다른 사람앞에서 애정을 표현하는 저런 포즈로

사진을 찍는게 많이 쑥스러우셨을것이다.

어색하면서도 행복한 웃음을 짓고 계시는 아빠.


우리 완희가 얼마나 많이 컸고, 말도 많이 늘어서

담에 오시면 깜짝 놀라실거라고 기대하고있었는데...

많이 아프고 안타깝습니다.


그동안 가족을 위해서 고생 많이 하셨어요.

아시죠?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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